개와 늑대의 시간은 해 질 녘에 프랑스 양치기들 사이에서 유래된 프랑스어 표현으로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대를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해 질 녘에 실루엣만 보고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하는 게 왜 어려웠을까요?
정답은, 개와 늑대가 같은 생물 종(種, species)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늑대는 개와 다르게 인간에게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동물입니다. 개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며 주변에 위협을 막아내지만, 늑대는 가축과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같은 생물 종이면서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 두 동물 사이에는 어떤 시간이 있었고 어떤 유전적 차이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개와 늑대와의 관계
현 분류학 기준에 따르면 개는 늑대의 일종으로 둘은 같은 종(種, species)으로 분류됩니다. 성체가 된 후엔 개와 늑대의 외형을 살펴보면 뚜렷한 차이가 있어 보이면서도 유전적으로는 차이가 미미합니다. 미토콘드리아의 DNA가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유전자의 일치도가 99.96%입니다. 이는 인간이 서로 다른 인종 간에 갖는 유전적 다양성(대략 0.1%)보다도 적은 차이며, 개와 늑대의 유전적 차이는 같은 동아시아인 중 한국인과 중국인의 유전적 차이(0.04%)와 유사합니다.
같은 종인지 아닌지는 보통 양자 사이에 생긴 2세대가 생식능력이 있는지 없는지가 가장 중요한데, 늑대와 개는 같은 종이기에 둘 간의 번식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늑대와 개를 교배시켜 태어난 것이 늑대개이며, 늑대개는 생식능력이 있습니다!!
즉, 개는 늑대의 아종(亞種, subspecies)이며 인간에게 길들여진 늑대의 일종입니다.
개와 늑대가 분화된 시간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추정되는 시간은 기원전 14,000년 전부터 30,000년 전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케셀록 동굴(Kesserlock cave)에서 개의 유골을 발견해 연대 측정 결과 약 12,000~14,000년경이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해당 유골과 비슷한 시기로 추정되는 독일의 본-오베르카셀(Bonn-Oberkassel) 지역과 이스라엘의 나투피안(Natufian) 지역 유적지에서는 개와 인간의 유골이 같이 발견되어 개와 인간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성염색체인 Y-chromosome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늑대로서 인간과 함께 산 흔적은 무려 12만 년 전부터 발견되었으며 지금으로부터 6만 8천 년 전에서 15만 년 전 사이에 개로 유전적 변화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앞으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또 다른 견해가 나올 수 있겠지만 기원전부터 개와 인간의 관계는 긴밀한 협력 관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와 늑대의 유전적 차이
이렇듯 늑대와 개가 차이를 보이는 시간은 계통 전체의 역사에 비하면 극히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므로 서로가 다른 독립된 종으로는 분화하기까지는 부족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에게 있어서 개와 늑대는 역할이 서로 다른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차이에 의해서 달라졌을까요?
미국 미시간대 인간유전학과 어맨다 펜들턴 박사 연구진은 개와 늑대의 유전체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인도, 베트남, 포르투갈 등의 떠돌이 개(야생견) 43마리와 전 세계의 야생 늑대 10마리의 유전체를 비교·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유전체의 246(전체 유전체에 약 0.04%)곳에서 변이가 일어났음을 확인하였습니다. 해당 유전자들은 늑대가 개의 특성을 갖게 하는 주요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구진은 RAI1 유전자에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요, 인간에게 이 유전자가 누락되거나 중복되는 변이가 일어나면 수면 장애 등 뇌 질환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야행성인 늑대가 길들여지는 과정에서 RAI1 유전자에 일어난 변이가 24시간 주기의 리듬을 결정하는 멜라토닌과 세로토닌 분비를 바꾸어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론하였습니다. 또한 해당 유전자 변이의 영향으로 개의 온순함과 과잉 사회성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와도 관련이 있다고 연구진들은 발표하였습니다.
또 다른 연구로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브리지트 폰홀트 연구진이 발표한 내용에서 인간이 가진 장애 중 하나인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Williams-Beuren Syndrome WBS)과 비슷한 유전자적 특징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관련 유전자는 GTF2I과 GTF2IRD1로써 해당 유전자들이 만들어 내는 위치에 변이가 있어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을 보이게 됩니다.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IQ가 50~60 범위에 있으며, 상대적으로 얼굴과 물체의 인식능력은 뛰어나지만, 공간인식과 시각-운동능력은 심각하게 약해진다고 합니다. 또한 지나칠 정도로 사교적인 성향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특징이 개의 유전자적 특성에서도 발견되어 개가 인간에게 친밀함을 보이고 소통과 교감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인간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성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늑대와 인간의 관계
늑대와 인간은 활동 영역과 생활 방식이 많이 겹칩니다. 과거 수렵 채취 시기 무렵의 인간은 몇 개의 핵가족으로 구성된 집단생활을 하였으며 높은 지능 및 지구력을 활용하여 사냥감을 지칠 때까지 몰아가는 전략을 통해 사냥을 하였습니다. 해당 전략은 울프팩(wolf pack)이라고도 불리는 늑대의 사냥 방법과 완전히 같은 방법입니다. 이 때문에 인간과 늑대는 끊임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으며 선사시대부터 근세까지 생존 경쟁하던 관계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은 늑대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고 가장 좋은 상대인 인간과 교류하고 복종하는 아종(개)을 데리고 대응하게 되었습니다.
개와 인간의 관계
개는 인간에게 가장 밀접한 파트너 중 하나입니다. 과거 수렵을 도와주던 사냥견부터, 양 같은 가축들을 이끌고 보호하는 목양견 등 인간의 생산 활동을 직접적으로 도와주었으며, 현대에는 뛰어난 후각을 통해 마약 및 위험물을 탐지하는 세관견, 경찰 작전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경찰견, 각종 장애인을 돕는 보조견과 안내견, 조난당한 사람을 돕는 인명구조견 등 인간의 삶에 가까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이런 유용한 파트너를 사람이 길들이지 않을 수 없었겠죠?
늑대가 어떻게 개로 길들여 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하지만, 최근 가장 유력한 학설은 늑대 중 일부 개체가 인간과 사회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 개체들은 인위적으로 세대를 거듭하여 선택 교배를 통한 육종을 통하여 개가 되었다는 학설입니다. 스웨덴 스톡홀름대의 크리스티나 한센 휘트 박사 연구진이 iScience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인간이 던진 공을 새끼 늑대가 물고 돌아오는 행동을 처음으로 관찰했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공을 물어오는 행동은 늑대에서 개로 길들여지면서 새로 진화한 게 아니라 그런 능력을 가진 야생 늑대만 골라 키우며 개의 특성으로 되었고 해당 개체들은 인간의 의도를 이해하고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개체들을 끊임없이 선발하고 선택적으로 교배하는 육종을 통해서 개는 지금까지도 인간에게 가장 든든한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 그리고 디지털 육종
개와 늑대의 시간은 계통 역사에서 보면 종이 분화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시간입니다. 또한 개와 늑대의 유전적 차이는 0.04%로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두 동물이 갖는 차이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유전자가 갖는 강한 힘으로 생각하면 설명이 됩니다. 유전자가 갖는 강한 힘을 활용하여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적으로 교배하고 새로운 아종 및 품종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육종이라고 합니다. 결국 늑대를 육종시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개로 길들이게 되었고 오늘날에도 필요성에 따라 다양한 품종을 개량해 나가며 육종이 이루어지고 있죠.
이렇듯 인간은 육종을 통해서 인류에게 유리하고 도움이 되는 개체 및 품종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는 현대에서도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전체를 연구하는 방법, 기계학습, 빅데이터 분석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경험으로 이뤄지던 전통 육종과는 다르게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디지털 육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육종은 기존의 전통 육종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기존 육종방식에서 발생하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육종 패러다임입니다.
(주)인실리코젠은 생물정보 전문기업으로 다양한 생물에 대한 유전체 분석, 기계학습, 빅데이터 분석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다양한 디지털 육종 성공 사례를 보유 하고 있습니다. (주)인실리코젠은 이러한 역량을 통하여 디지털 육종을 위한 전문 자회사인 (주)아이브리딩을 설립하여 이러한 시간의 흐름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디지털 육종 시대에서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요? 아마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더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개와 늑대의 시간을 유전자적인 차이로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사람에게 공 물어오는 늑대 첫 확인 "놀이 행동, 길들여지기 전부 가능", https://news.v.daum.net/v/20200123031451943
- 개가 인간에게 친밀한 ‘유전적 이유, https://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Trend.do?cn=SCTM00166719
- BRIDGETT M. VONHOLDT et al. Structural variants in genes associated with human Williams-Beuren syndrome underlie stereotypical hypersociability in domestic dogs. SCIENCE ADVANCES 19 Jul 2017 Vol 3, Issue 7
- Germonpré, M., Sablin, M. V., Stevens, R. E., Hedges, R. E. M., Hofreiter, M., Stiller, M., & Després, V. R. Fossil dogs and wolves from Palaeolithic sites in Belgium, the Ukraine and Russia: osteometry, ancient DNA and stable isotopes.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36(2), 473–490. (2009)
- Druzhkova AS, Thalmann O, Trifonov VA, Leonard JA, Vorobieva NV, et al. Ancient DNA Analysis Affirms the Canid from Altai as a Primitive Dog. PLoS ONE 8(3) (2013)
- Oetjens, M.T., Martin, A., Veeramah, K.R. et al. Analysis of the canid Y-chromosome phylogeny using short-read sequencing data reveals the presence of distinct haplogroups among Neolithic European dogs. BMC Genomics 19, 350 (2018).
- Pendleton, A.L., Shen, F., Taravella, A.M. et al. Comparison of village dog and wolf genomes highlights the role of the neural crest in dog domestication. BMC Biol 16, 64 (2018).
- CollectGBStamps : Working Dogs, 2008 (February 5 2008) Commemorative , Vol.45 No.2 (Issue Details)
EDITOR
김성민
iLAB · Consul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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