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하버는 20세기 초 독일의 화학자로 프로이센 왕국 브레슬라우(현재의 폴란드 브로츠와프)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다만 그는 유대인의 정체성 보다 독일인의 정체성이 더 강했습니다.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에서 1894년부터 1911년까지 교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하버는 오스트리아의 한 회사에서 암모니아 합성에 대한 자문 요청을 받게 됩니다.
그의 연구는 농업에 있어서 혁신적인 전환점을 제공했으며, 그중에서도 하버-보슈법은 농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이 방법은 공기 중 질소를 암모니아로 변환해 비료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든 기술로, 식량 생산량을 급격히 증가시켜 인구 증가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하버의 화학 관련 연구는 단순히 긍정적인 영향만을 남긴 것은 아닙니다. 그는 화학적 지식을 이용해 1차 세계 대전 중 화학 무기의 개발도 하였으며, 과학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농업에 혁명을 가져온 프리츠 하버의 업적과 그 이면을 깊이 있게 탐구해 보겠습니다.
농업과 질소
인류는 농업을 시작하여 안정적인 먹거리를 제공받아 왔습니다. 이로 인해 인류의 문명은 번성할 수 있었고 인구수 또한 증가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농업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농업 생산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가시키기 어려웠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농업에는 땅이 필요하며, 땅에서 제공되는 양분만으로는 식물이 자라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인류는 경험적으로 퇴비를 사용하거나 밭을 쉬게 하는 휴경, 주요 재배 작물을 순환하여 재배하는 윤작 등을 통한 지력 회복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윤작 사례, 작물을 순환 재배하여 지력 회복이 가능케 한다. (출처: Princeton Student Climate Initiative)
퇴비는 먹고 남은 음식, 동식물의 사체, 대소변 등을 활용하였습니다. 특히 구아노(새똥으로 이루어진 인광석)는 이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새똥으로 만들어진 구아노, 질소화합물인 요산 성분이 풍부하다. (출처: 에코타운의 브런치스토리)
휴경은 땅을 쉬게 하여 자연스럽게 지력을 회복하는 것이며 윤작은 콩과 식물을 활용하여 지력을 회복시켰습니다. 정확한 원리는 몰랐지만 콩과 식물을 재배한 땅에는 다른 작물도 잘 자란다는 경험에 의해서였습니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필수 성분 중 질소를 회복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 추후 밝혀집니다.
질소 고정의 어려움
생물체를 구성하는 화학 원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약 99% 이상이 탄소(C), 수소(H), 산소(O), 질소(N)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먹이사슬에 가장 근본이 되는 식물의 경우 공기와 물을 통해 탄소, 수소, 산소를 흡수하여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질소의 경우 공기 중에서 바로 흡수할 방법이 없어 별도의 질소화합물을 통해 흡수해야만 가능했기에 식물의 성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신경 써야 하는 원소였습니다. 질소는 공기 중 78%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성분입니다. 다만 화학적으로 질소 분자는 삼중결합을 통해 엄청나게 안정적인 성분으로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생물은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식물 생장의 꼭 필요한 요소, 질소는 삼중결합으로 인해 흡수가 어렵다. (출처: 한화토탈에너지스 케미인 공식 블로그)
이 질소 분자가 질소화합물로 변경되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질소 고정이라고 합니다. 땅에 질소를 고정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앞서 언급한 콩과 식물을 심을 경우와 번개가 칠 경우입니다. 콩과 식물을 심을 경우 뿌리에 기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 중에 질소를 고정합니다. 번개가 칠 경우 공중방전이 일어날 때 순간적으로 고온이 되면서 질소가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을 하게 되어 질소화합물로 변하게 됩니다. 즉 번개 정도의 에너지가 발생하여야 공기 중에 질소를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소 고정 방법 (출처: Royal Portrush Golf Club Blog)
여담으로 번개의 신(북유럽 신화에 토르, 그리스 로마 신화에 제우스 등)은 농업의 신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번개가 치면 농사가 잘된다는 경험에 의해 농업의 신으로 추앙받게 된 것입니다.
공기에서 빵을 만들다: 하버-보슈법
이처럼 공기 중에 질소를 고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는 1900년대 하버의 연구에 의해 해결됩니다. 질소를 암모니아(질소화합물 중 일부)로 만드는 화학식 자체는 간단합니다. 바로 질소 분자에 수소 분자를 결합하는 것입니다.
N₂ + 3H₂ → 2NH₃
다만 이는 아주 간단한 이론과는 달리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게 되고 이를 위해 가열을 강하게 하면 생성되는 암모니아의 생산량이 적어지기 때문에 효율 적이지 않았습니다. 프리츠 하버는 반응속도를 촉진하기 위한 고온, 고압 환경을 조성하면서도 온도를 너무 높여 암모니아 생산량이 최대한 보존되기 위한 조건을 찾기 위해 무수히 많은 촉매와 원소를 조합하고 복잡한 실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러고는 철 촉매를 사용하여 약 200 기압, 4~500°C가 암모니아를 만드는 최적의 방식임을 발견해 냅니다.
질소의 암모니아 변환 (출처: 한화토탈에너지스 케미인 공식 블로그)
또한 독일의 화학회사 BASF(Badische Anilin und Soda Fabrik)에 근무하던 카를 보슈(Karl Bosch)는 이를 대규모 공정 시스템 개발을 진행하여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하버 보슈법 공정 과정 (출처: 버스텍의 머리 밖 E:드라이브 블로그)
이 공중질소합성법을 개발하고 공정한 두 화학자의 이름을 따서 하버-보슈법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 인공 비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이 농업에 사용함으로써 식량 생산량을 급격히 증가시켜 인구수 증가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공중질소합성법의 효과
어쩌면 현대 인구의 대다수는 프리츠 하버의 연구에 의해서 태어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연적인 농업 방식으로 최대한 부양할 수 있는 인구의 경우 약 20억 명가량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하버-보슈법이 개발되던 당시에 인구수는 약 16억 명 정도였습니다. 현재 인구수는 약 80억 명가량으로 약 5배가량의 증가를 보였습니다.
하버 보슈법 발견 이후 인구 증가 추이
이를 통해 생각해 보면 현대 인류의 대다수가 공기로 만든 인공 비료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인공 비료는 퇴비에 대다수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이래에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기생충으로부터 상당 부분 해방시키기도 했습니다. 즉 인류에 가장 큰 공포인 기근에서부터 해방해 줬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습니다.
공기에서 죽음을 만들다: 독가스
프리츠 하버가 활동하던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습니다. 그는 조국인 독일에 승리를 위해 독가스(염소가스)를 개발하였습니다. 염소(Cl)는 살균력이 강한 할로겐 원소입니다. 흡입한 염소 가스는 폐로 들어가 몸속의 물과 반응, 염산이 되고 이렇게 생긴 염산은 말 그대로 폐를 녹여서 심각한 고통과 호흡곤란을 일으킵니다. 이를 응용하여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한 것입니다.
Cl₂ + H₂ → 2HCl
심지어 국제법을 피해 많은 적군을 사살하는 방법까지 제안하며 이를 추진했습니다. 실제로 독가스의 사용은 참호전으로 고착화된 1차 세계 대전에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나중엔 연합군에서도 독가스를 사용하면서 양 진영 가리지 않고 많은 인류가 사상되는 비극을 초래합니다.
1915년 4월 독일, 이프르 2차전에서 염소가스 공격. 현대 화학전의 아버지 프리츠 하버의 감독하에 실시
(출처: 다음 블로그 직썰)
많은 사람들이 그가 개발한 독가스에 의해 죽어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전범 재판을 피해 갈 수 있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독가스를 사용한 탓에 책임을 물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연구한 독가스는 후에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한 홀로코스트에 적극 활용되는 비극을 만듭니다.
매드사이언티스트의 초라한 결말
독가스 개발이라는 원죄가 있음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과 질소비료 개발이라는 업적을 바탕으로 프리츠 하버는 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해인 1918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합니다.
노벨 화학상(1918년) (출처: 위키피디아)
다만 독가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아내이자 같은 화학자이자 부인이던 클라라 임머바르는 남편의 연구를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개발한 독가스는 그의 친척들을 포함한 같은 민족인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주변인뿐만 아니라 그 또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당 집권 후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 독일에서 추방받게 되었으며 더 이상 독일에 머무를 수 없는 하버는 다른 거처를 알아보던 중 스위스 바젤에 한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됩니다.
과학의 이중성
현대 인류의 절반 가량(약 40억 명)이 인공 비료로 인해 혜택을 받아 태어났다고 합니다. 1차 세계 대전 및 홀로코스트에서 독가스에 의해 사상한 사람은 약 1,000만 명가량 된다고 합니다. 단순히 수치로 보면 살린 사람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지만 과연 생명의 가치를 숫자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또한 질소는 폭약에 들어가는 주요 재료이며 염소 또한 강한 살균력으로 위생을 책임지는 주요한 원소입니다. 과학을 활용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인류에게 구원을 줄 수도, 파멸을 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과 이 글을 읽어 주시는 여러분은 어쩌면 프리츠 하버에 공중질소합성법에 의해서 태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을 살리고 또 많은 사람을 죽인 매드사이언티스트 프리츠 하버에 업적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공기의 연금술(2015, 토머스 헤이거 저)
- 한화토탈에너지스 케미인 공식 블로그, https://www.chemi-in.com/689
- 유튜브 지식해적단, https://www.youtube.com/watch?v=Q37oxNgdhAc
EDITOR
김성민
iLAB · Senior Consul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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