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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를 능가하는 바디워치: 내 몸 안의 생체시계와 시차증후군

2023. 10. 30. 08:52

시차증후군

추석처럼 긴 연휴나 연말이면 해외여행을 많이 가곤 합니다. 저도 몇 년 전 연휴를 활용해 해외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데요! 행복한 시간을 기대하며 긴 시간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저를 반겨준 건 시차증후군으로 인한 피로감이었습니다. 보통 먼 곳에 가기 위해 장거리 비행을 하게 되면 여러 시간대를 통과하게 됩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많은 사람이 시차증후군을 겪습니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단지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달라졌을 뿐인데 왜 이런 증상이 발생하는 걸까 싶습니다. 우리 몸에 시계라도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싶은데요, 사실 우리 몸에 시계가 있는 것이 맞습니다. 지구에 사는 생명체 대부분은 생체시계를 갖고 있습니다.

비행기

 

우리가 사는 지구는 하루를 주기로 자전하고, 일 년을 주기로 공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밤낮과 계절의 변화가 반복됩니다. 이는 지구가 탄생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왔으며, 지구에 사는 생명체는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해왔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자연의 변화 주기에 맞춰 생리·화학적 반응이 나타나는데 이를 `일주기 생체리듬(circadian rhythms, biological clock)`이라고 합니다. 해가 뜨면 잠에서 깨어나 활동하고, 밤이 되면 졸음이 오는 것이 바로 일주기 생체리듬에 의한 반응이죠.

 

일주기 생체리듬, 그리고 생체시계의 발견 

미모사, 생체시계

일주기 생체리듬이 처음 기록되었던 때는 무려 기원전 4세기 경입니다. 알렉산더 대왕 시절 원정대 선장 안드로스테네스가 타마린드 나뭇잎이 낮과 밤에 따라 위치와 모양이 변화하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 첫 기록이었습니다. 이후 현대에 이르러 이에 대한 첫 실마리가 잡힙니다. 바로 18세기 프랑스 천문학자 장-자크 도르투 드 메랑의 미모사 관찰이었습니다.

 

드 메랑은 창가에 키우던 식물 `미모사`를 보다가 우연히 낮에는 태양을 향해 잎을 벌리고 밤이 되면 잎이 닫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처음에 이 현상이 빛에 의한 자극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해 수면 활동(Sleep Movement)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리고 빛 자극이 없을 때의 미모사가 어떻게 활동할지 궁금해졌죠. 얼마 뒤 그는 미모사를 암실에 넣어 관찰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빛이 없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미모사가 24시간을 주기로 잎을 벌렸다가 닫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결과는 상당히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요, 일정 주기로 반복되는 생체리듬이 외부 자극에 의한 수동적 반응이 아니라 내부의 무언가에서 비롯된 능동적 반응이라는 것이었죠. 이후 과학자들을 추가적인 여러 실험을 통해 식물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내부의 무언가`를 `생체시계`로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생체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습니다.

 

생체시계의 비밀

세이무어 벤저 교수, 초파리
초파리를 통해 주기 유전자를 발견한 세이무어 벤저 교수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eymour_Benzer)

드 메랑 이후 드물게 시행되던 생체시계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건 1971년 미국 캘텍 대학교의 세이모어 벤저 교수와 제자 로날드 코놉카가 진행한 초파리를 이용한 유전학 연구였습니다. 이들은 초파리를 모델로 이용하여 화학적 실험을 진행했고, 수많은 돌연변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일주기에 이상이 있는 돌연변이를 찾아냅니다. 이후 원인을 파악하는 실험이 추가로 진행되었고, 신기하게도 일주기 이상 돌연변이는 모두 한 유전자의 변이 때문에 발생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 유전자의 이름을 주기라는 뜻의 Period(PER) 유전자로 명명하고 이를 미국학술원지(PNAS)에 발표하게 됩니다. PER 유전자 발견으로 인해 생체시계에 관한 연구는 한 단계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목표는 PER 유전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체리듬을 만들어내고 영향을 주는지 알아내는 것이 됩니다. 

 

이후 생체시계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다시 연구를 진행했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게 됩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제프리 C. 홀 메인대 교수, 마이클 로스배시 브랜다이스대 교수, 마이클 영 록펠러대 교수는 PER 유전자를 분리하는 데 성공하고, 일주기에 따른 생체시계의 자세한 작동 원리를 밝혀냅니다. 그리고 이들은 생체시계의 비밀을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합니다.

 

생체시계 작동 원리

생체시계, 시차증후군
주기 유전자가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 과정을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위의 그림은 24시간 주기에서 유전자 단위 발생 현상을 보여줍니다. 주기 유전자가 활성화되면 주기 mRNA가 만들어집니다. 이 mRNA는 세포질로 옮겨지고, PER 단백질을 만듭니다. PER 단백질이 세포핵에 축적되면 주기 유전자의 활동이 차단됩니다. 즉, PER 단백질이 자기 자신을 만든 주기 유전자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주기 생체 리듬에 따른 억제 피드백 메커니즘입니다. (출처: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2017/press-release/)

먼저 제프리 홀과 마이클 로스배시는 PER 단백질이 주기 유전자의 활성을 차단한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PER 유전자가 자기 자신의 합성을 방지하여, 주기적인 생체리듬을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다만 이 가설은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PER 단백질이 밤 동안 핵에 축적된다는 건 맞았습니다. 하지만 PER 단백질이 어떻게 세포핵에 도달하여 주기 유전자의 활동을 억제하는지 과정을 설명할 수 없었죠. 그렇게 연구가 오리무중에 빠지던 중, 마이클 영 교수는 생체리듬에 필요한 두 번째 유전자인 타임리스 유전자(timeless, TIM)를 발견합니다. TIM 단백질이 PER 단백질과 결합하여 세포핵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세포핵으로 이동한 PER 단백질은 자신을 생산한 주기 유전자의 활동을 차단하게 됩니다.

 

생체시계, 시차증후군
생체시계의 분자 구성요소를 단순화한 그림 (출처: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2017/press-release/)

생체시계의 작동원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주기 유전자는 PER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2. 밤이 되면 주기 유전자가 PER 단백질을 생산해 세포질에 저장합니다.
3. 낮 동안 PER 단백질이 TMI와 결합합니다.
4. 결합한 두 단백질이 세포핵으로 이동해 주기 유전자가 활동하지 못하게 작용합니다.

물론 PER 단백질, TMI 단백질, 주기 유전자 외에도 clock 유전자, doubletime 유전자(DBT)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정교한 생체시계 시스템을 구축하게 됩니다.

 

생체시계, 시차증후군

지금은 간단히 설명했지만, 사실 생체시계의 원리는 상당히 복잡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생물체는 생체시계에 따라 24시간 일주기 생체리듬을 가지게 되고 이 메커니즘에 따라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이죠. 우리 인간의 경우 생체리듬에 따라 수면 패턴을 조절하고,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호르몬과 체온, 혈압 등을 조절합니다. 장거리 비행 후 많은 사람이 겪는 시차증후군의 원인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생체리듬에 맞춰 살지 못하는 경우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주로 교대 근무나 야간 근무를 지속적으로 해온 사람에게 발생하는데, 초기에는 수면장애, 면역력 저하, 행동장애 등의 생리적 불편함을 겪습니다.

 그리고 더욱 오랜 시간 생체시계의 교란이 발생하는 경우 암 질환 발병률 증가, 행동 또는 기억 장애, 심혈관 질환, 불임 등 큰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생체시계, 시차증후군
시차증후군 예방법 (출처: http://www.healtip.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10/)

 

마치며

이번 포스팅을 통해 생체시계와 생체리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지금도 생체시계의 더욱 자세한 원리와 생리 작용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체시계 교란에 따른 장애 치료 및 개발에 구체적인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하는데요, 그동안 우리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통해 본인의 생체리듬을 지키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바쁜 현대인에게 쉽지 않겠지만, 건강한 삶을 위한 규칙적인 습관부터 만들어 나가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매 끼니 챙겨 먹기, 자기 전에 스마트폰 하지 않기 등 사소한 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모두 본인의 생체리듬에 알맞게 생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


EDITOR

이수호

Bioinformatics System Dept. · Devel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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