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외부 환경과 계속 노출되어 있지만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자신에게 접근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판단해서 병원체의 경우에는 막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큐티클층, 세포벽, 항균 물질 등 다양한 방어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뚫리게 되어 감염이 발생하고, 감염된 상황을 성공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면 어떨까요? 식물체는 병들고 곧 죽게 될 것입니다. 예시 중 하나로 최근 몇 년간 딸기 농가를 괴롭힌 딸기 시들음병이 있습니다. 작년에만 대략 1,0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예측되었는데요, 이 병은 고온 환경과 함께 Fusarium oxysporum 이라는 토양성 곰팡이가 작은 곤충 등에 의해 딸기 뿌리에 생긴 상처를 통해 감염 증상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식물의 입장에서 모든 요인을 다 차단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있는가 하면 공생하는 미생물도 있기 때문인데요, 그중에서는 무려 육지 식물의 80%와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는 수지상 균근균(arbuscular mycorrhizal fungi)도 포함됩니다. 식물은 어떻게 미생물 중 병원체만 골라서 싸울 수 있을까요? 적을 알아채는 과정이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병원체 인식 기능을 담당, 패턴 인식 수용체(PRR)
우선 병원체가 식물의 영양분을 위해 침입하려면 식물에 붙어야 합니다. 식물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붙은 병원체들을 바로 인식할 수 있어야 빠른 대처가 가능한데요,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PRR(Pattern recognition receptor), 즉 패턴 인식 수용체입니다. 고등 식물의 경우에는 엄청난 수의 수용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생물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에는 병원체가 너무나도 다양해서, 수가 많은 만큼 매우 다양한 미생물의 접촉부를 인식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키틴, 펩티도글리칸, EF-Tu, cold shock protein, 특정 미생물에 존재하는 편모 등 다양한 패턴 인식 수용체가 다른 물질들을 인식하게 됩니다.
미생물을 인식하는 단서, 미생물 연관 분자 패턴(MAMP)
예를 들어 편모의 경우 아래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지의 아래쪽 확대 영역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편모의 특정 부위와 이를 인식하는 다양한 식물 패턴 인식 수용체의 명칭입니다. 더 자세하게 보자면, 편모의 flg22 부위는 내부에 보존된 22개의 아미노산 잔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식물 패턴 인식 수용체 중 하나인 FLS2의 LRR(Leucine Rich Repeat) 3-18 부위가 flg22와 접촉하여 이 잔기들을 인식하게 됩니다. flg22에 있는 22개의 아미노산 잔기처럼, 이렇게 패턴 인식 수용체가 인식할 수 있는 미생물들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패턴을 MAMP(microbe-associated molecular pattern), 미생물 연관 분자 패턴이라고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던 다양한 물질들도 세부적으로 본다면 이런 특이한 패턴들을 각자 가지고 있어서, 식물의 패턴 인식 수용체가 각각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예시로 애기장대에서 EF-Tu의 펩티드는 EFR, 키틴의 경우 CERK1이라는 패턴 인식 수용체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생물 인식과 함께 일어나는 면역 반응, PTI(PAMP-Triggered Immunity)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에서 패턴 인식 수용체가 MAMP를 인식하게 되면 1,100개 이상의 유전자 전사 유도가 일어남과 동시에 많은 세포 반응이 유도되는 빠른 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아래 사진이 모식도인데요, 생각보다 매우 복잡한 과정이 연계되어 일어나게 됩니다. 이를 크게 요약하자면 MAMP 인식, 칼슘 이온 유입, 원형질막의 탈분극, 활성 산소(ROS) 생산까지 수 분 안에 진행되며 이후의 하위 신호 전달, 다양한 식물 호르몬의 생합성 및 호르몬으로 인한 연쇄반응, PR(pathogenesis-related) 유전자 발현 및 식물의 면역체계 작동까지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1시간 이내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합니다. MAMP를 패턴 인식 수용체가 인식하는 단계부터 면역 반응이 나타나는 이 광범위한 과정을 통틀어 PTI(PAMP-Triggered Immunity)라고 부릅니다.
내가 입은 피해에도 반응한다, 손상 연관 분자 패턴(DAMP)
지금까지 미생물의 특정 패턴을 인식해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PTI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그러면 식물은 특정 패턴을 인식하는 면역 반응만 진행할까요? 아닙니다. 자신이 피해를 입었을 때도 면역 반응이 나타납니다. 병원체는 침입을 위해 세포벽 분해 효소를 생성하기도 하고 식물 조직에 손상을 주는 독소도 생성합니다. 이미 손상된 세포에서 방출되거나 침입을 받는 중이지만 아직 온전한 세포에 의해 분비되는 물질들이 있습니다. 큐티클층을 만드는 기본 구조인 큐틴 단량체, 세포벽 구성요소 등이 이에 포함되는데요, 이들을 DAMP(damage-associated molecular pattern), 손상 연관 분자 패턴이라고 부릅니다. 이들 역시 일부는 패턴 인식 수용체에 인식되어 PTI와 같은 면역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미생물의 새로운 생존 전략, 이펙터(effector)
이렇듯 식물은 자신의 피해와 병원체의 특정 패턴을 인식하여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기작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병원체의 입장에서는 이 PTI를 뚫어야 본인들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병원체는 이 면역 반응을 어떤 방식으로 뚫을 수 있을까요? 병원체는 특정 단백질을 식물 세포 또는 세포 외 공간으로 분비하여 면역 반응을 막게 되는데, 이 단백질을 이펙터(effector) 라고 합니다. 병원체는 각자마다 이펙터를 식물에 퍼뜨릴 전략을 다르게 가지고 있습니다. haustorium을 만들거나, 물리적인 바늘을 가지고 있어 주사기와 같이 세포에 힘으로 찔러넣거나, 세포벽 사이로 진입하는 등 각자 다른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이렇게 삽입된 이펙터는 복잡한 PTI 반응을 저해하여 병원체가 식물에 잘 감염되도록 합니다. 이를 ETS(Effector-Triggered Susceptibility), 이펙터 유발 민감성이라고 합니다.
이펙터를 막아내는 면역 반응, ETI(Effector-Triggered Immunity)
다시 식물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그러면 식물이 이펙터에 당하면 그대로 죽어야 할까요? 식물도 발맞추어 이펙터를 차단할 수 있도록 진화하였습니다. 2020년 사이언스 지에 게재된 논문을 살펴보면, 애기장대에서 이펙터를 인식할 수 있는 RPP1 이라는 수용체 4개가 Hpa(Hyaloperonospora arabidopsidis) 곰팡이의 이펙터 ATR1를 인식하여 사량체를 이루고, 식물 방어 작용에 필요한 NAD 분해효소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다양한 이펙터를 식물들이 인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나타나는 면역 반응을 ETI(Effector-Triggered Immunity)라고 부릅니다. ETI도 PTI와 일부 유사한 반응이 있습니다. 칼슘 이온 유입, 활성 산소 생산, PR 유전자 발현이 그 예시입니다. 하지만 ETI가 일어난 상황이라면 이미 병원체가 식물에 침투해서 이펙터를 뿌린 이후겠죠? 따라서 ETI는 방어 작용과 동시에 빠른 세포 사멸을 유발합니다. 병원체가 있는 세포를 죽임으로써 다른 식물 조직에 해당 병원체가 옮겨지지 않도록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식물과 병원체의 싸움, 지그재그 모델
식물과 병원체는 창과 방패의 싸움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병원체는 ETI를 막기 위한 다른 이펙터를 생산하고, 식물은 그 이펙터도 막기 위한 ETI를 작용하고, 이런 식물과 미생물의 창과 방패와 같은 작용을 식물의 방어력으로 간단히 나타내면 지그재그 모양을 띤다고 해서 지그재그 모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지그재그 모델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식물과 병원체는 수억 년 동안 적대적인 관계를 맺어왔으며 이를 통해 서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식물의 유전체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식물 면역체계의 기원부터 어떻게 상호 작용이 발전하였는지 등도 같은 의미에서 연구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패턴 인식 수용체가 어떤 MAMP를 인식하는지나 PTI 과정 중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일부터 SAR(systemic acquired resistance), 전신획득저항성 이라는 2차 감염에 대응하는 면역체계 연구, 이런 면역체계를 이용한 품종 및 생육 기술의 개발 등 단순히 식물 신호 전달 체계뿐만이 아니라 농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구들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식물의 면역체계 연구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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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기 재배 현장에서 일어나는 ‘시들음병’ 이야기", 2022년 10월 7일 접속, http://www.hort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244
EDITOR
김형민
iLAB · Consul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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